한밤중에 바치는 기도

A. W. 토저의 신앙수필 51

The Best of A. W. Tozer 51

이 책은 전자책이므로 여기 를 클릭하시고 주문하시면 됩니다. 

 

책소개

목사 토저는 실용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시대에 살았던 복음적 신비가였다. 그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한 영적인 세계를 보라고 호소한다. 대중을 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고 호소한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닮기 원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라고 호소한다. 이것은 21세기 오늘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메시지이이다.

 

 

 

목차

서문

1. 하나님을 가까이 함

2. 말씀하시는 하나님

3. 온유와 쉼

4. 한밤중에 바치는 기도

5. 색욕적인 것과 신령한 것

6. 올바른 자가 되려면 올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7. 믿음은 실패를 무릅쓰고 담대히 전진한다

8. 성화된 상상의 가치

9. 가까움은 닮음이다.

10.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미온적인 이유

11. 하나님은 돌보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12.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곳

13. 필요하지만 위험한 조직

14.분할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15. 지도자의 책임

16. 어느 선지자의 기도

17. 절제 있는 용기

18. 이 세상은 운동장인가, 전장인가?

19. 교회 내에서 약화되는 그리스도의 권위

20. 기독교인은 불가해한 존재이다

21.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22. 인스턴트 기독교

23. 신학의 대용품은 없다

24. 자기비판의 중요성

25. 신령한 사람의 표식

26. 의인의 뿌리

27.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28. 훈계를 받아들이라.

29. 신의 큰 연회

30. 성경의 가르침인가, 성령의 가르침인가?

31. 십자가는 혁명적인 것이다.

32. 천국 감시원의 보고

33. 실생활에 적용되는 성경 지식

34. 모든 것을 서류로 정리하여 보관하려는 심리 상태를 경계하라.

35. 유머가 주는 유익함과 그것의 남용

36. 단순과 독거 생활을 기르자.

37. 성경의 세계가 참 세계이다.

38. 3차원에서의 찬양

39. 인간: 하나님의 처소

40. 사람들은 왜 성경을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41. 믿음에 대한 교리적 오해

42. 참 신앙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다.

43. 옛 십자가와 새 십자가

44. 하나님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시다.

45. 영을 시험하는 방법

46. 영적 독서에 관하여

47. 성도는 홀로 가야 한다.

48. 성령 충만하는 길

49. 예배: 도덕적인 사람의 당연한 일

50. 당신은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지 않은가?

51. 땅을 경작하여 기적을 거두라.

 

 

내용 일부

 

4. 한밤중에 바치는 기도

 

나는 신앙 부흥에 관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서 신앙 부흥은 밤에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지극히 참된 것을 지적하는 격언들 중의 하나이다.

만일 이 격언의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부흥을 위해 낮에 드리는 기도를 듣지 아니하신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피곤하고 지쳤을 때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쉼을 얻고 기운을 회복하여 드리는 기도보다 더 강력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시 잘못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참회의 고행으로 만들기를 요구하시거나 중보기도로 자신을 벌하는 것을 즐기실 정도로 가혹하신 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와 같은 금욕적인 관념들의 흔적들이 몇몇 복음적 기독교인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형제들의 열심은 칭찬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의식중에 타락한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학적인 경향을 하나님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 부흥이 한밤중에 이루어진다는 사상에는 상당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신앙 부흥(혹은 다른 신령한 은사들이나 은혜)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임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거룩해지며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소망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만큼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확실히 하시는 말씀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육체적인 감각으로서, 이것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 실질적인 고통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갈망이 고통이 되는 순간에 갑자기,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이 충족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문제는, 우리의 갈망을 충족시켜 달라고 하나님을 설득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너무나 냉담하며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복되신 성령이 밀고 들어가 만족스럽게 채워줄 갈망의 공간이 없다.

이따금 종교적 현장에서 어떤 사람의 충족되지 못한 영적인 동경들이 넘 강렬하여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사람은 매주일, 매년 자기 교회에서 기도하는 냉랭한 형제들의 습관적이고 안일한 기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영적 욕구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이따금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당황한 그의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마치 눈을 뜨기 위해 소리치다가 제자들에게서 책망을 받은 소경처럼 더욱 더 크게 소리친다. 그는 자신의 기도의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무엇인가 그의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늦게까지 기도한다. 그의 기도 시간은 그의 심령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는 밤에만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신앙 부흥이 한밤중에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철야기도, 또는 크게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공로가 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축복은 마치 샘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어떤 교사들은 선행에 대한 보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은혜에 의해서 얻는 유익과 날카롭게 대조시키는데, 근본적으로 선행에 대한 보상은 죄사함과 마찬가지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거룩한 사도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는 것 외에 다른 주장을 하지 못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선하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피조물은 결코 일반적인 의미에서 무엇을 거두어들이지못한다. 만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에 의해 존재한다.

줄리앙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기록하였다: “우리가 성실하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구하며, 은혜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해하며, 사랑으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되며 더 큰 기쁨이 된다. 만일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을 취한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지극히 작은 것이 되며 하나님께 완전한 영광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는 모든 온전한 것이 있으며 의로운 것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지극히 고귀한 기도이며, 그것은 필요한 것들 중에서 지극히 저급한 것에게까지 미친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선이 우리를 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들이 하나가 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들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육욕적인 욕망들과 싸울 때, 우리가 육신이라는 사자와 독사를 짓밟을 때, 이기심이라는 용을 짓밟으며 진실로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여길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시사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하시며 복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 주신다.

개인적인 신앙 부흥과 승리의 생활에 대한 교리를 배우는 것과 $(document).ready(function(){ goods_contents_resize(); $('img',document).load(function(){ goods_contents_resize(); }); }); function goods_contents_resize(){ $("#contents_frame", parent.document).height($(document).height()+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