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이집트 사막 공주수도원을 설립한 파코미우스의 생애를 기록한 책~

 

이 책은 기독교 수도원 공동체로서 사상 처음으로 공주수도원을 설립한 파코미우스의 일생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의 생애를 통하여 사막 공동체의 형성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은성출판사에서 출판한 “사막 교부들의 시리즈”: [금언], [지혜], [삶], [세계]에 이어 팔라디우스의 [초대 사막 수도원의 역사]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독거 은둔 수도사들이거나 반-독거 수도사들에 관한 자료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파코미우스의 일생을 통해 공주수도원을 탐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파코미우스의 생애』에 대한 자료들

 

1. 이집트 수도원을 세 가지 형태로 나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혼자 수도생활을 하는 독수도 또는 은둔수도(anchorite)이다. 수도사란 어원적으로는 “혼자 거처하는 사람”(monos, 또는 monachos; μοναχός)을 뜻한다. 그러므로 독거(獨居) 수도사 또는 은수사(隱修士)라는 말에 모순이 없다. 독거 수도사로는 현재 콜짐산 내륙 면에 자리 잡고 수도했던 성 안토니, 콜짐산의 홍해 면에서 수도했던 폴(St. Paul)이 있다. 성 안토니는 당시 아리우스파와 지루한 싸움을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안토니의 생애』를 집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교회사적으로 공식적인 수도사로 기록되었다.

 

2. 또 한 가지의 형태가 공동체적으로 모여 살면서 생활하는 집단적인 수도사들이다.

 

이러한 형태를 공주(公住) 수도, 또는 회(會) 수도사라고 한다. 공주 수도(cenobite)란 “홀로 거처하는 것”과 “공통체로 사는 자”라는 상충되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모순적인 단어다. 그러나 파코미우스는 홀로 거처하며 수도하기에 부족한 일반인들을 한 데 모아 공동체로 살면서 교육하고 훈련하는 공주 수도원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지금의 룩소 근처에서 자취들을 찾아볼 수 있다.

 

3. 세 번째 수도원의 형태로는 반-독거(semi-anchorite), 즉 반-공주 수도원의 형태이다.

 

이런 수도원은 지금의 와디 알-나트룬(Wadi al-Natrun) 지역인 스케테에 있다. 그곳에는 네 개의 수도원이 있다. 이들은 주중에는 각자 독거 수도처에 머물면서 기도하며 단순한 노동을 하다가, 토요일에 공동체로 모인다. 예배와 기도, 애찬을 나눈 후 한 주일 동안 필요한 생필품을 받아서 각자 기도처로 헤어진다. 이들의 삶과 영적 지도에 대해 『사막 교부들의 금언』 등에서 읽을 수 있다.

 

4. 이 책은 공주 수도원을 처음으로 창설했던 파코미우스의 일생, 그들의 공동체, 그리고 공동체 후계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파코미우스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성 안토니의 생애처럼 당시 교회의 권위 있는 자가 집필하고 보존된 것과는 달리 구술로 전해진 것을 정리하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복사함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생애”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파편적이며, 지금은 사어(死語)가 된 곱트어 방언으로 기록되었다. 곱트어 방언은 크게 봐서 나일 강 상류, 즉 지금의 룩소 지방으로서 파코미우스 공주 수도원 근처에서 사용되었던 사히딕(Sahidic) 방언이 있고, 나일 강 하류 삼각주 지역, 즉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근처에서 사용하는 보하이릭(Bohairic) 방언이 있다. 이 책은 보하이릭 『생애』를 번역한 것이다.

 

5. 지금까지의 여러 『생애』에 대한 단편들, 그 중에 바티칸의 사히딕 생애, 보하이릭 생애, 아랍어 생애, 헬라어 생애(Greek Life) 등 어느 것이 생애의 원조인가?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이 부분은 학자들에게 맡기자. 학자들의 비평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파코미우스와 그가 설립한 공주 수도원이라는 실체에 초점을 두려는 것이다. 파코미우스는 어떤 정신으로 공주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들의 삶과 정신이 현대를 사는 우리 한국교회에 무슨 의미와 교훈을 주는가? 여기에 우리는 집중해야 할 것이다.

 

6. 나는 몇 차례 이집트 수도원들을 방문하고, 짧지만 그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우리 한국 개신교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비해 너무나 생소하고 다른 점이 많다. 공식적으로 1년 동안 50일 넘게 금식하고, 하루 종일 시편을 외우며, 한 번에 2~3시간 하루에 두 차례 예배와 철야 예배, 사막의 흙먼지를 털며 힘들여 수확한 말라비틀어진 토마토이지만 고이 간직했다가 손님들 식탁에만 올려놓는 환대와 친절, 인사할 때마다 심장을 치면서 “이 죄인을 용서하시오”라고 말하는 겸손, 과격한 이슬람들과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서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몰라 오른쪽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새겨 놓고 시신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그들의 긴박감을 느꼈다.

 

그들은 죽음과 비천 곁에서 살고 있다. 카이로에서 배출되는 모든 쓰레기 집하장에서 이슬람들이 증오하는 돼지를 키우면서 주민증도 없이 동물처럼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며 고집한다. 교회가 제(諸)교육의 조종(祖宗)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되었다. 교회 교육이 프로그램화되고, 편의주의에 의해 복음이 왜곡 선포되고, 교세 확장을 위해 인본(人本)주의가 판치고 있다. 이러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나는 교회 공동체의 원형을 상기하려고 이집트 사막으로 간다. 간절히 바라기는 『파코미우스의 생애』와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음미함으로써 오늘날 바람직한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혼(魂)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기 바란다.

 

―서언 중에서―

 

          본문 내용         

 

1. 머리말

   1.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7-18)고 하셨다. 그 후에 선지자요 종인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든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후 아브라함의 씨요 인간으로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열방을 위한 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고 명령하셨다.

 

   2. 그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에 따라 신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은 이교도 황제들이 도처에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많은 순교자들이 고문을 받아 죽어 면류관을 썼는데, 그 최후의 순교자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용감한 피터(Peter)였다. 그 후 거룩한 교회 내에서 믿음이 크게 성장했고, 수도원들과 고행수도사들을 위한 장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최초의 수도사들이 순교자들의 인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지자 엘리야 및 사도 바울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7-38)라고 말하면서 언급한 사람들의 행동을 재연했다. 그들은 밤낮 거룩한 십자가 및 거룩한 순교자들의 투쟁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고 엄격하게 금욕고행하면서 몸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보고 본받았다.

 

   3. 수도원운동의 시작 거룩한 교부 성 안토니는 위대한 엘리야나 엘리사 혹은 세례 요한처럼 고결한 생활을 했다. 페르노우(Pernouč) 산에서 형제들과 함께 생활한 거룩한 사부 아모운(Amoun)과 그의 충실한 제자 테오도르 역시 고결하게 살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는 복되신 분이 온 땅에 존재한 수도사들의 거룩하신 아버지들—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슬픔과 탄식이 아니라 은혜를 주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땅에 물을 대셨기 때문이다.

 

   4. 이집트와 테바이드(Thebaid)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AD 284-305)와 막시무스 황제의 박해(AD 305-306) 이후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이교도들이 증가했다. 감독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했으므로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다.

 

   5. 파코미우스의 탄생(A.D. 292년경)과 소명 스네(Sne) 교구에 파코미우스(Pachomius)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크신 자비로 말미암아 디오스폴리스(Diospolis) 교구의 세네세트(Šeneset)라는 마을에서 기독교인이 되었고, 믿음이 성장하면서 완전한 수도사가 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벧전 2:9)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삶을 상세히 기술해야 한다.

   파코미우스의 유년 시절 어린 시절 파코미우스는 부모와 함께 물고기들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강가로 갔는데 물 속의 물고기들은 파코미우스를 보고 놀라 도망쳤다. 제사를 주관하고 있던 사람은 “신들의 원수를 이곳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신들이 노할 것입니다. 저 소년 때문에 물고기들이 위로 올라오지 않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부모는 소년 파코미우스에게 “왜 신들이 너에게 노했느냐?”라고 책망했다. 소년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부모는 제사를 드리려고 파코미우스를 데리고 신전으로 갔다. 제사가 끝난 후 부모는 파코미우스에게 귀신들에게 바쳤던 포도주 한 모금을 주었는데, 파코미우스는 즉시 그것을 토해냈다. 신들이 파코미우스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괴로워했다. 파코미우스의 유년 시절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어느 날 부모가 파코미우스에게 어느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양 고기 한 냄비를 가져다주라고 했다.

파코미우스가 고기냄비를 가지고 걸어가는데 마귀는 개의 모습을 한 많은 귀신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려 하게 만들었다. 소년 파코미우스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서 울었고, 그 즉시 귀신들은 흩어졌다. 마귀는 또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네가 길을 가면서 시달리는 것은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소년은 그의 얼굴을 향해 숨을 내쉬었는데, 즉시 노인은 사라졌다.

   소년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양고기를 노동자들에게 주었다. 그는 그날 밤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곳 주인에게는 예쁜 두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파코미우스를 붙잡고서 “나와 동침하자”고 말했다. 파코미우스는 그런 행동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더럽고 악한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그는 그 여인에게 “나로 하여금 더러운 죄를 범하게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개처럼 내 누이와 동침한단 말입니까?”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그를 그녀의 수중에서 구해 주셨다. 그는 그곳에서 도망쳐 집으로 달려갔다.

 

   7. 파코미우스의 징집, 그리고 처음으로 기독교인을 만나다 얼마 후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었다. 그는 로마 황제들 중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고 나서 얼마 후 페르시아인 폭군이 제국을 빼앗으려고 공격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하나님의 원수를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군사 징집 명령을 제국 전체에 내렸다. 황제의 칙령을 가지고 파견된 관리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군사를 모집했다.

   당시 20세였던 파코미우스도 징집되었다. 파코미우스는 그리 건강하지 못했지만, 관리들은 모집 인원을 채우기 위해서 그를 징집했다. 파코미우스는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기 위해 끌려가면서 하늘을 향해 탄식하며 “나의 주 예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들이 탄 배는 북쪽을 향해 항해하여 옛 제국의 수도인 네(Ne: 테베를 지칭하는 콥트어)에 도착했고, 그들은 그 도시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들이 큰 불행에 빠진 것을 본 그 도시의 몇몇 시민들은 밤중에 빵과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라고 권했다. 파코미우스는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는데 왜 이렇게 친절합니까?”라고 물었는데, 그들은 “이들은 기독교인들인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때문에 사랑으로 우리를 대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파코미우스는 한구석으로 가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이시여, 속히 나에게 선하심을 베푸셔서 이 불행에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일평생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감옥에서 끌려 나가 배를 타고 나일 강 동편에 있는 안티노에(Antinoe, 안티노폴리스)로 갔다.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도시에 상륙할 때면 파코미우스를 세상의 쾌락을 위한 좋지 못한 곳으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파코미우스는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이 사랑하는 순결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책망했다.

 

   8. 파코미우스가 기독교인이 되다 그들이 안티노에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적을 물리친 콘스탄틴 황제는 황제는 징집을 면제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풀려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젊은 파코미우스는 남쪽으로 가다가 세네세트(Seneset)라는 황량한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주민들이 매우 적었다. 파코미우스는 그 마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강가로 내려가서 고대인들이 프만피스라피스(Pmampisrapis)라고 부르는 작은 신전으로 들어가서 기도했는데, 그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이곳에 정착하여 분투하여라”고 감화하셨고 그는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 및 가난한 마을 사람들, 또는 항해중이거나 도보로 여행 중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되는 나그네들의 양식을 위해서 약간의 채소와 몇 그루의 야자수를 재배했다. 그의 설득력 있는 대화와 태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버리고 그 마을에 와서 살았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낸 뒤에 사람들은 그가 성찬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를 교회에 데려가서 세례를 주었다.

   세례를 받은 날 밤에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하늘에서 이슬이 자기 머리 위에 내린 후 오른손에서 응축되어 벌집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땅에 떨어져 지면 전체에 퍼졌다. 그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파코미우스야, 이것을 알고 있어라. 조만간 이 일이 너에게 일어날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에 의해 그곳에서 진보를 이루었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격려해 주었고, 그의 명성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파코미우스 때문에 그곳에 와서 살았다.

 

   파코미우스 및 공동체의 역사  

c. 292 파코미우스 탄생

c. 312 로마군에 징집

c. 313 세례 받음

c. 316 팔라몬(Palamon) 지도하에 수도사가 됨

c. 323 타벤네시(Thebennesi)에 정착

c. 328 테오도르가 방문하다.

c. 329 아타나시우스가 공동체를 방문하다. 포우(Pbow)와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설립하다.

c. 336 테오도르를 타벤네시의 총책임자로 임명하다. 파코미우스는 포우에 거처하다.

340 두 번째 수도원 설립

345 라토폴리스(Latopolis)의 종교회의

346(5월) 파코미우스 사망

347(7월) 페트로니우스(Petronius) 사망; 호르시에시우스(Horsiesius)가 총책임자가 되다.

350 호르시에시우스가 사임, 테오도르가 총책임자 되다.

351 아모운이 방문하다.

368(4월) 테오도르 사망, 호르니에시우가 다시 총책임자 되다.

387 호르니에시우 사망

391 메타노이아(알렉산드리아 근교)에 수도원을 설립.

404 제롬이 파코미우스 공동체 규칙과 편지를 라틴어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