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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 년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의식은 급작스럽고도 신비하며 상당히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거의 폭발적이다 싶을 만큼 큰 용서에 관한 관심이다. 용서를 구하며, 용서를 받고, 서로 용서를 교환하는, 전에 없던 일들이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의식의 대변화는 매우 감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에는 엄청난 정신적, 영적 변화가 동반되므로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어 잘못 다루어졌을 경우에는 그 변화가 오히려 파괴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이런 용서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에 크게 경탄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동시에 용서란 공동체적이고 개인적인 상처를 보듬어야 하고,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뒤로 하여야 하는 만큼 위태하고 경박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에 경각심을 가진다. 용서를 너무 가볍게 해석하여 인간의 고통과 인격의 복잡성을 완전히 간과하다시피 한 경우도 많다. 많은 의문과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특히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탐구되기는커녕 거의 인정도 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용서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되지 않았다.우리는 그 단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용서란 묵인과 같은 것인가? 용서는 언제나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합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역기능 가정, 어떤 인종, 전체로서의 국가와 같은 하나의 공동체적 집단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수세대 전에 발생했던 일에 대해서도 용서가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용서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용서를 시도할 때 갖는 분노, 아픔, 슬픔, 두려움이란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용서는 의지의 일시적인 행위인가? 그것은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할 과정이 아닌가? 용서 안에서 한계와 경계를 지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나 공동체는 빼놓고 용서 할 수 있는가? 좋아는 하지 않아도 사랑은 할 수 있는가? 심각하고 장기적인 폭행이 있었을 때 과연 용서가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없는가? 하나님은 진실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가? 우리는 그런 잔혹한 폭행과 비인간성을 세상에 허락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을 때에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런 자기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와 같은 문제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하기 힘든 것들이다.
 나에게도 용서에 관해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건강한 용서와 건강하지 못한 용서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피정을 다니며 나누었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많은 기도, 독서와 깊은 생각이 한 권의 책으로 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거기에 편집자가 용서에 관한 이 책이 시의적절한 것이라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기본 안을 가지고 많은 시간 고민한 끝에 골격이 준비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가 빠져 있었다. 내가 이런 특별한 책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평소에는 잘 꾸지 않는 나에게는 생생하고 강력하며 의미심장한, 내가 가르침의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꿈이었다. 그 꿈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여는 아홉 가지의 복에 관한 책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책을 쓸 때에는 열정을 가지고 쓰라.”  

단호한 말씀이셨다. 

잠이 깬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갔다. 성경을 열고 마태복음 5장을 펴서 팔복을 읽어  보았다. 물론 나는 그 말씀을 잘 알고 있다. 교회에서도 여러 차례나 들어 보았던 유명한 말씀이 아닌가? 하지만 그때 다른 시각에서 그 본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는 내 용서의 개요가 깊은 축복의 9단계와 함께 하나씩 흘러감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다 작성된 내 책이 거기 있었다! 예수께서 이미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분명 그 복의 본문을 읽고 듣고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말씀에는 죽어 있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생명이 약동하고 있기에, 우리는 본문에서 다양한 의미와 통찰력을 찾는다. 예컨대, 우리는 한 공동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응답하듯이 공동체적 관점에서 이 본문을 읽을 수 있다. 혹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가난한 자와 불안한 자, 배고픈 자 그리고 착취당하는 자에게 닿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도덕적 정의와 긍휼의 각도에서 이 본문을 읽을 수도 있다.   

 
“복을 받는다”의 성경적 의미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행복하고 충만해진다는 뜻이다. 또한 복을 받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임무를 수행할 능력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건강한 용서를 하도록 힘을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를 감싸시고 그 용서의 길을 우리와 함께 걸으신다. 예수님은 고통 중에서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고 기도하셨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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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슬로슨 웰너 Flora Slosson Wuellner
 
개인과 집단의 영적 거듭남과 내적 치유라는 전문 사역을 하고 있다.
그녀는 교사이자 피정 지도자이며, 영적 인도자이고 저자이다.
웰너는 유나이티드 처치 오브 크리스트(United Church of Christ)의 목사이며,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태평양 종교학교(Pacific School of Religion)의 보좌 교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