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칼리아 4

동방 기독교의 최고의 지혜서 필로칼리아 전 5권 드디어 완간!!




필로칼리아란 삶과 진리 계시의 초월적인 근원으로 이해되는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 탁월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 사랑을 통해서 지성은 정화되고 조명되고 완전을 이룬다.

필로칼리아는 시간의 미로를 통해 자는 여정, 삶의 광야와 허무를 통해가는 사랑과 지식의 고요한 길이다. 이는 영적인 길을 계시해 주며 그 길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적극적인 요인이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본문들은 관상생활을 실천하는 길잡이가 된다. 성 니코디모스는 “내면적 기도를 기도를 배우는 신비의 학교로 세례를 받은 때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그렇게 신화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엡 4:13)하게 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일,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안을 깨끗이 하는 것(마 23:16)이 강조된다.

여기에 나오는 본문들은 100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시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서 정교회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 특히 영성적인 기도 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필로칼리아 접집은 총 5권으로 되어 있는데 성산의 니코디모스, 고린도의 성 마카리오스 두분이 편찬했다. 그 중에 필로칼리아 제4권은 위대한 성 시메온, 니키타스 스키타토스, 참회자 론기노스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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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신학자 시메온(St. Symeon the New Theologian)

153편의 실질적이고 신학적인 본문들

1.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계명들을 위해서 죽는 것, 이 죽음이 생명을 가져온다고 믿는 것, 가난을 부로 여기며 비천함과 치욕을 참된 영광과 존귀로 여기는 것,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믿는 것(cf. 고후 6:9-10), 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은 곧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한 그리스도의 지식을 소유한다고 믿으며(엡 3:8),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쓸모없는 것이요 연기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현세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 초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까지 고통과 불행과 재난을 가져다주는 모든 시험과 유혹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3. 하나님의 계명들보다 자기 부모를 조금이라도 더 존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cf. 마 10:37). 만일 그들의 양심이 살아있다면 분명히 그들을 고발할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결코 위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범하지 않습니다.

13. 마귀들은 영성생활을 하려는 우리의 결심을 흔들고 성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했으나 실패하게 되면, 경건한 위선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방해합니다. 첫째, 그들은 마치 사랑과 동정심의 감화를 받은 듯이, 우리의 육신에게 어느 정도의 휴식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육체적으로 기진하여 냉담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의 휴식을 취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우리에게 무익한 토론에 참여하라고 권하여 여러 날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위선자들에게 관심을 두어 그들을 모방한다면, 마귀들은 전략을 바꾸어 우리가 이런 식으로 타락하는 것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제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냉정하고 초연한다면, 그들은 질투에 사로잡혀 우리를 수도원에서 몰아내기 위해 힘이 닿는 모든 일을 행할 것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조롱 당하는 것과 겸손이 존중되는 것을 참고 보아내지 못합니다.

90. 영적인 길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자신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며, 성령 안에서 교제함으로써 아버지와 화평을 누림으로써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영혼의 구원을 획득하는 길입니다. 만일 이것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헛되이 수고하고 행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인생길을 따라가는 사람을 그 정점으로 인도하지 않는 길은 무의미한 길입니다.

153. 언젠가 신 신학자 시메온은 사제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제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거룩한 성찬을 집례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육체만 아니라 영적으로 순결해야 하며 죄가 없어야 합니다. 둘째, 그는 외적인 태도와 영혼의 내적 상태에 있어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제단 앞에 설 때에는 육신의 눈으로는 거룩한 떡과 포도주를 바라보고 영적으로는 신격을 감지해야 합니다. 또 그의 마음으로 떡과 포도주 안에 보이지 않게 현존하시고 거하시는 분을 의식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청원해야 합니다. 그가 친구가 친구에게 말하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말할 때에, 그가 기도하는 방식은 그의 내면에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거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사제들을 보아왔습니다. 형제들이여, 용서해 주십시오.”그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찬사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젠가 나를 깊이 신뢰하는 친구는 어느 수도사 사제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사제로 서임될 때에 성령을 보았었는데, 전례를 집례할 때에는 항상 성령을 보곤 합니다.’나는 그 말을 듣고서 어떤 방식과 형태로 보았느냐고 질문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분화되지 않았고 형태가 없는 빛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있는데, 그 빛은 지성으로만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 나는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나타났었고, 지금은 성도들과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나타난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 세세토록 영광과 권세가 있을지어다.”


니키타스 스티타토스 (Nikitas Stithatos)


니키타스 스티타토스는신 신학자 시메온의 제자로서 그의 전기를 저술했지만, 스승만큼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는 11세기 초(1020년경)에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스튜디오스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수도생활을 했으며, 적절한 과정에 따라 사제로 서임되었다. 신 신학자 시메온은 1022년에 사망했으므로, 그는 개인적으로 신 신학자 시메온과 그리 오래 교제할 수 없었다. 시메온은 니키타스에게 자신의 저술들을 복사하는 일을 맡겼다. 몇 년 후에 니키타스는 환상 중에 시메온을 보고서 이미 널리 유포되어 있던 시메온의 저술들의 간행을 준비했다. 그는 1040년대초에 콘스탄틴 9세 모노마코스(Constantine IX Monomachos) 황제와 그의 부인 스크릴라이나(Skliraina)의 부정한 관계를 거리낌없이 반대했기 때문에, “담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인 “스티타토스(Stitatos)라는 별명을 얻었다. 1054년에 추기경 훔베르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일 케룰라리우스가 대결할 때에, 니키타스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맞서 정교회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아마도 그는 1076년부터 92년 사이에 스튜디오스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된 듯하다. 그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니키타스의 문체는 신 신학자 시메온의 문체보다 복잡하고 그의 접근 방법 역시 시메온의 접근 방법보다 추상적이지만, 니키타스는 스승 시메온과 많은 공통된 주제들을 사용한다. 그는 신적인 빛을 빈번하게 언급하지만(II, 2, 5, 43, 45), 아레오파고의 디오니시우스가 사용한 신적인 어두움이라는 상징을 시메온보다 더 강조한다(I, 1, 43; II, 50-1; III, 39, 53). 니키타스도 시메온과 마찬가지로 영적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며(I, 35; II, 10, 53-4), 사람들이 어떤 외적 상황에 처해있든지 항상 거룩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으로 사막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I, 72).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의 참된 도피”는 내적으로 자기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I, 2, 75-6). 니키타스는 신 신학자가 세운 본보기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의 비밀들을 배운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의 선물들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선교사”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며(II, 96; III, 13, 27-8), 또 이웃 사랑이 기도보다 고귀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주상성인 시메온과 의견을 같이한다(II, 76).


덕의 실천에 관하여:


1. 영적 행로의 첫 단계의 중간 지점을 통과했으며 신비신학의 삼인조를 획득한 사람들은 덕의 완전한 삼인조를 구성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 내재하는 네 가지 요소를 적절한 방식으로 기록하려는 충동을 받습니다.
첫째 요소는 영혼의 자유, 즉 무정념입니다. 그것은 금욕적 수행의 결과로서 열망하는 사람을 들어올려 피조 세계의 영적 본질들을 관상하게 하며 신학의 신적 어두움으로 인도합니다.
둘째 요소는 기도와 눈물에서 생겨나는 지성의 깨끗함, 은혜에 대한 의식을 낳는 깨끗함이며, 그것에서부터 지적 작용이 흘러나옵니다.
셋째 요소는 우리의 내면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화를 경험하는 사람들 안에 풍부한 성령의 조명을 만들어내며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계시해주고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보물들을 드러내줍니다.
넷째 요소는 하나님의 위협적인 말씀의 결과로서 영적 지식을 의식하는 재능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강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5:26-27). 다윗이 크게 두려워하면서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시 40:9-10)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2. 덕을 향한 첫 단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마지막 단계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열망하는 것이다.

3. 진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혼은 보이는 것들로부터의 이탈과 결합된 뿌리깊은 믿음과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금욕적 수행을 소유합니다. 솔로몬의 표현을 빌자면, 악한 영들이 쉽게 끊을 수 없는 “삼 겹 줄”(전 4:12)을 소유합니다.

19. 우리가 내면에 정념들의 원료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의도적으로 육성한다면, 정념들이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에게서 힘을 얻어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원료를 제거하고 회개의 눈물로 마음을 정화하고 가시적인 것들의 거짓됨을 혐오한다면, 우리는 보혜사의 현존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빛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것입니다.



테올립토스, 필리델피아 총대주교


테올립토스(Theoliptos)의 저술들은 대부분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는 14세기의 정교회 신학의 발달에 있어서 그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어왔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되어 있는 본문들은 그의 저술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테올립토스는 1250년경에 니케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결혼했으나 일찍이 이혼하고 수도사가 되었다. 그는 리용 공의회(1274)에서 공표했고 황제 미카엘 8세 팔레올로고스가 지지한 정교회와 로마 교회의 연합을 반대하여 투옥되었다. 미카엘 황제가 사망한 후, 1284년에 테올립토스는 필라델피아의 주교로 승진했고 그곳에서 그의 40년 동안 총대주교로 재위했다. 그는 1310년에 튀르크 족이 그 도시를 공격했을 때에 영웅적으로 도시를 수호했고, 1322년에 사망했다.
그는 영적 교부로서 널리 존경을 받았고, 이 분야에 관한 그의 저술들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크라이스트 필란토로포스 소티르 수도원의 수녀원장이었던 이레네 데블로기아 코움나이나(Irene-Evlogia Choumnania) 수녀에게 보낸 편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에 테올립토스의 제자였던 성 그레고리 팔라마스(St. Gregory Palamas)는 『삼제가』(Triads)에서 그를 그 시대에 살았던 헤시카즘의 주도적 교사들 중 한 사람이라고 언급했으며, 또 “참 신학자요 하나님의 비밀들의 진리를 아는 신뢰할 수 있는 선견자”라고 언급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내적 사역과 수도서원에 관하여』(On Inner Work in Christ and the Monastic Profession)


수도서원이란 높고 결실이 풍부한 나무로서, 그 뿌리는 모든 유형적인 것들로부터의 이탈이요, 가지는 정욕적인 갈망으로부터의 자유와 당신이 부인해온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소외입니다. 그 나무의 열매는 덕의 획득, 거룩하게 해주는 사랑, 그리고 이 둘의 결과인 끊임없는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 등이기 때문입니다(cf. 갈 5:22)

세상을 버리는 데 대한 상급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피난처입니다. 여기에서 ‘세상’이란 감각적인 것들과 세속적인 경향들에 대한 애착을 의미합니다. 만일 당신이 진리의 지식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로부터 이탈한다면, 그리스도와 동화되며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획득할 것인데, 그 사랑은 당신이 세상적인 것을 모두 버리고 귀한 진주, 즉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허락할 것입니다(cf. 마 13:46).

당신은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cf. 갈 3:27), 그럼으로써 깨끗이 씻음을 받고 영적 은혜의 비추임을 받으며 원래의 고결함을 회복합니다. 그 때에 당신의 의지가 약하여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세상에 대한 지나친 애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자신의 모양을 파괴하며, 육체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력하게 하며, 정념과 관련된 생각들이 당신의 영혼의 거울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영적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깥 세상과의 잡담을 중지하고 내면의 생각들을 대적하여 싸우십시오. 그리하면 마침내 당신은 깨끗한 기도의 거처와 그리스도의 거처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리스도의 지식과 임재의 조명을 받고 원만해지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할 때에 기뻐하며 독을 피하듯이 세상의 쾌락을 피할 것입니다.



시내 산의 성 그레고리(St. Gregory of Sinai)

계명들과 교리들, 경고들과 약속들; 생각들과 정념들과 덕들, 그리고 침묵과 기도에 관한 137개의 글

1. 당신이 먼저 썩어짐으로부터 자유하고 깨끗해지지 않는다면, 타락하기 전의 인간처럼 영적으로 지혜롭게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각이 지배하는 무분별한 상태가 우리의 깨끗함을 덮었고, 육체의 썩어짐이 원래의 썩지 않음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2. 자신의 깨끗함을 통해서 성인이 된 사람들은 타락하기 전 상태의 인간처럼 영적으로 지혜롭습니다. 추론하는 단순한 기술은 인간의 지성을 깨끗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타락 이후로 우리의 지성은 악한 생각들에 의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지혜의 물질주의적이고 수다스러운 영은 우리를 한층 더 넓은 지식의 범주들에 대해 말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우리의 생각들을 크게 조야하고 거칠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박식한 담화와 거친 생각의 결합은 통합된 지식은 물론이요 진정한 지혜나 관상에 미치지 못합니다.

38. 죄인의 영혼 안에 장래의 형벌의 첫열매들이 은밀하게 존재하듯이, 의인의 마음 안에서는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장차 받을 복들의 예시가 존재하고 경험됩니다. 정념이 들끓는 상태는 지옥이요, 고결한 생활은 하늘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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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kalia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서 “아름답거나 선한 것을 향한 사랑”을 의미하며, 특히 두 권의 그리스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1. 오리겐의 『필로칼리아』: 358년부터 359년 사이에 대 바질과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선별하여 발췌한 글 모음집으로서 성경 해석, 섭리, 자유 의지 등을 다룬다.

2. 18세기 그리스 교회의 영적 갱신 운동인 Kollyvades(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예배 때에 먹는 삶은 보리라는 kollyva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집단의 주도적인 인물인 코린트의 성 마카리우스(St. Macarius of Corinth, 1731-1805)와 성산의 성 니코데무스(St. Nicodemus of the Holy Mountain, 1749-1809)의 『필로칼리아』. 원래 1782년에 출판되었으며, 4세기부터 5세기에 활동한 약 30명의 저술가들의 글을 발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하게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에바그리우스(4세기), 포티케의 디아도쿠스(5세기), 고백자 막시무스(7세기), 신 신학자 시므온(11세기), 다마스쿠스의 피터(12세기), 시나이의 그레고리, 그레고리 팔라마스, 칼리스토스, 이그나티우스 크잔도 포울루스(14세기)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 본문의 선택은 마카리우스가 했고, 니코데무스가 그 자료를 개정하고, 머리말을 추가했다.

수덕 신학과 신비 신학의 모든 측면을 다룬 『필로칼리아』는 헤시카즘이라고 알려진 정교회의 영적 전통을 알려주는 주요한 원전이다. 그 책에서는 여덟 가지 악한 “생각”과 덕목, 정념들과 무정념; 성경 해석과 자연적 창조에 대한 관상; 마음의 기도와 예수 기도, 그리고 호흡 조절을 포함한 육체적인 방법을 다룬다.

『필로칼리아』는 현대 정교회 영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93년에 파이지 벨리코프스키(Paisii Belichkovskii)가 편집한 슬라브어 요약판이 Dobroto-lubiuy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그나티 브라인카니노프(1857)와 은둔자 테오판(1877년, 5권)은 러시아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그것이 19세기의 러시아 신앙에 미친 영향은 익명의 러시아 농부―그는 배낭 안에 Dobroto-lubiuye를 넣어 가지고 다녔다―의 저서인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에 의해 증명된다. 1947~81년에 두미트루 스타닐로에가 루마니아어 판을 출판했다(총 10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2008년 초에 제4권을 출판함으로써 전 5권이 완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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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관하여

필로칼리아는 전술한 바와 같이 여러 영적지도자들의 금언들은 모은 책이므로 저자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단지 성산의 성 니코디무스와 고린도의 성 마카리오가 편찬했다는 것만 이 자리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금언자 각 사람의 생애에 대한 것은 이 책 각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