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지의 줄리안의 하나님 사랑의 계시 / Showings


중세의 어두움을 깨치고 희망과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온 세상에 펼친 성녀!!


영국의 신비가 노리지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은 영국의 가장 대중적인 신비가, 그녀는 영국의 노리지 지방에 있는 성 줄리안교회 근처에서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다.

줄리안은 1342년 12 월에 영국의 노리지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세속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단지 수도명이 줄리안이라는 것만 전해진다. 아마 그녀가 거주했던 교회가 줄리안교회였기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373년 5월 13일 서른 한 살의 줄리안은 심하게 앓았다. 그날 밤 사경을 헤매던 줄리안은 하나님으로부터 16가지의 계시를 받았다(장문 제2장). 그 중 마지막 계시는 앞의 현시들의 진리를 확증하는 계시였다. 이때부터 줄리안은 성 줄리안 교회에 부속된 다락방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 환상들을 토대로 기도와 관상과 영적지도의 삶을 시작했다.


성 줄리안 교회는 당시 4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랜 전통의 교회였다. 그녀가 은둔 수도생활을 했던 성 줄리안 교회는 1942년에 폭격되었으며, 지금의 장소는 그 후 성공회 수녀회에서 기도처로 재건한 것이다. 줄리안 교회의 종탑 근처에 지은 이 줄리안의 은거처는 한 면이 교회의 벽에 맞대어 지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서, 방 한 면에 낸 창을 통해 사제가 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 방에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창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향해 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충고나 영적 지도를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창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은거처에는 외부 손님들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되어서 무질서한 대화를 금했다. 그녀의 일과 대부분은 이 은둔처에서 침묵과 관상기도로 짜여 있었다.


13세기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 노리지에 재속(在俗) 은수사가 50명이 있었고, 린에는 약 13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런던에 약 20명의 은둔자가 있었던 것과 비교된다. 노리지는 당시 런던 다음으로 번창했던 큰 항구도시로서, 영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종교적 여성 단체가 존재했던 유일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줄리안은 카로우(Carrow) 지역의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데 라틴어 구사에 익숙하지 못했거나,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당시의 통상적인 표현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줄리안은 거처에 담을 높이 쌓고 가축을 몇 마리를 길렀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개인인 소유도 얼마 소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활 대부분은 관상적 기도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에 기록 어디에도 극단적으로 금욕생활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저서 및 그녀의 영성


줄리안은 1373년에 자신이 받은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집필하거나 구술로 전하고자 했다. 그녀의 첫 번째의 『환시』(Book of Showings)는 “단문”(Short Text)으로 되어 있으며, 그 후 1393년경에 완성된 신학적으로 보다 발전된 “장문”(Long Text)으로 전해지고 있다.


줄리안은 영국 신비가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다. 그녀는 이전의 영적인 저자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자신이 받은 환상들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그녀의 노력에 근거한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장문의 결론은 그 핵심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것이 계시된 그때부터 나는 여러 번 우리 주님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를 원했다. 15년이 지났을 때 나는 영적인 이해로 해답을 받았다. 그것은 이런 말씀이었다: 너는 이것에서 네 주님의 의미를 알기 원하느냐? 그것을 잘 알라. 사랑이 그의 의미였다. 누가 그것을 너에게 계시하는가? 사랑이다. 그가 무엇을 네게 계시했는가? 사랑이다. 그가 왜 그것을 너에게 계시하는가? 사랑을 위하여서다.

 


 

줄리안은 1373년 5월 8일에 최초의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집』(Revelations of Divine Love)에서의 사려 깊은 해석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오늘날 성공회의 교회력에서는 5월 8일을 줄리안의 날로 기념하며, 줄리안을 기념하는 집단에서는 그녀의 묵상집을 침묵기도의 출발점으로 사용한다.


줄리안은 신비 체험,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탁월한 위치,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아버지와 주님은 물론이요 우리 어머니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 등에 신학의 기초를 둔다. 그녀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손에 대해 저술했다. 이러한 통찰들 때문에 그녀의 저서는 인내의 안내서로 간주되었으며,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신자들은 그 책을 체계적인 논문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 하나님(Mother God), 자비한 주님에 대한 소망의 근원으로 사용했다. 줄리안은 “나는 네 기도의 기초이니라”는 음성을 들었다. 15년 동안 깊이 생각한 뒤에, 그녀는 주께서 자신에게 “너는 이 일 안에 있는 주님의 의미를 잘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이 그분의 의미였다…이것을 굳게 붙들어라. 그러면 너는 사랑을 더욱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며, 다른 것은 알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께서 자신에게 “너는 이 일 안에 있는 주님의 의미를 잘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이 그분의 의미였다…이것을 굳게 붙들어라. 그러면 너는 사랑을 더욱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며, 다른 것은 알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을 깨달았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서 특별한 방법에 의해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이 항상 끊임없이 우리 안에 태어나신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속성은 생명과 사랑과 빛이라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줄리안에게 계시하신 성 삼위일체의 본질은 언제나 창조적이고 구속적이고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사랑의 필수 조건은 겸손이다. 줄리안은 죄를 피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사물의 본질적인 진실에 동의하고 응답할 수 있게 해 주는 불멸의 경건한 의지가 주어진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혼란스러운 시대의 고난, 흑사병, 잉글랜드 동부의 사회적 불안, 그리고 위클리프 파의 도전 등을 경험함을 통해서 천박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났다.
그리스도는 구속적인 행위 안에서 모든 사람의 고난에 동참하시며, 그의 구원은 모든 피조물을 위해 계획된다. 그녀는 “장차 구원받을 모든 것 안에서 지음받은 것과 모든 것의 조성자가 이해된다. 하나님은 인간 안에 계시며, 따라서 인간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


종, 즉 우주적이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의 딜렘마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며, 온갖 종류의 일이 잘 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녀는 영원 전부터 지구와 인류에게 부어져온 하나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강조하는 행복한 신비가이다.

 

선하신 하나님은 줄리안(Julian)이라는 경건한 여인에게 계시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노리지(Norwich)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여인 줄리안은 1413년에 이 계시들을 보면서 많은 위로의 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 은혜를 선물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첫째 은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은혜는 육체의 질병이었고, 셋째 은혜는 세 가지 상처를 선물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은혜는 내가 기도할 때에 임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크게 느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더 강력하게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거룩한 교회가 가르치고 보여주며 십자가 처형을 묘사한 그림들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까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 있으면서 나를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내 눈으로 보며,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들처럼 그분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원했습니다.


또 나는 육체의 눈으로 직접 목격함으로써 우리 주님 및 그분이 당하신 육체적 고통을 더 많이 알고, 성모 마리아 및 그 당시에 살면서 그분의 고난을 목격했던 사람들, 진심으로 그분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깊은 슬픔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들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원했습니다. 내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까지 하나님에 대한 다른 계시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계시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한층 더 정확하게 기억하려 했습니다.


둘째 은혜는 통회와 더불어 임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사, 하나님의 선물로서 육체적 질병을 소유하려는 강력한 소원이었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중병에 걸리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거룩한 교회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모든 의식을 받으면서 나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서 생명을 이어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병을 앓으면서 임종하는 사람이 느끼는 온갖 종류의 영적 고통과 육적 고통, 모든 두려움과 마귀로부터의 공격, 또 영과 작별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고통을 당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곧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을 원했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떠날 때에 이것이 내게 유익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것과 나 자신이 병에 걸리는 것과 관련하여 나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모두 평범한 청원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은 내 소원을 아십니다.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내게 그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선하신 주님, 그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도 노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서른 살이 될 때에 그러한 병에 걸리기를 원했습니다. 서른 살이라고 정한 것은, 거룩한 교회의 어느 분에게서 성 세실리아(St. Cecilia)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그 성녀는 칼로 세 차례 목에 상처를 입고서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은 나는 하나의 큰 소원을 품었고, 살아가는 동안에 세 가지 상처, 즉 통회의 상처, 동정심의 상처, 그리고 자원하여 하나님을 열망하는 상처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두 가지 상처는 조건부로 요청했고, 세 번째 상처는 조건 없이 요청했습니다. 내가 언급한 두 가지 소원은 먼저 내 정신에서 사라졌지만, 세 번째 소원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내 정신에 머물렀습니다.


내가 서른 살이 되고 여섯 달이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육체의 질병을 주셨습니다. 나는 꼬박 사흘 동안 앓았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밤에는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어 교회로부터 임종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모든 의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나는 이틀 동안 앓았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밤에는 가끔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무척 슬펐고 또 죽기 싫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는 데 즐거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며,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면서 계속 살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는 은혜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영원한 복과 비교해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온 세월은 지극히 짧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선하신 주님, 내가 죽는 것이 당신께 영광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때 나의 이성에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전심으로 원했습니다.


제7장 주 하나님은 이 복된 가르침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즉, 구체적인 환시에 의해서, 그리고 내 오성 안에서 형성된 말에 의해서, 그리고 영적 환시에 의해서 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영적 환시들을 내가 원하는 만큼 분명하고 완전하게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없지만,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 선하심과 사랑 때문에 분명하고 완전하게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며, 내 능력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신령하고 쉽게 받아들이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 안에서 하나이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동료 신자들이 내가 보았던 것과 동일한 것을 보고 알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 안에서 겸손히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듯이, 그들 모두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환시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 모든 것 중에서, 우리 주님이 매우 친근하시고 친절하시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고, 내 영혼에 가장 큰 기쁨과 확신을 채워주었습니다. 그 때, 나는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나에게는 오늘이 심판 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까닭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에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세상의 허영을 중시하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 순간에도 임종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나를 본보기로 하여 알 수 있듯이 현세의 삶이 짧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구체적인 환시를 통해서 내 앞에 놓여 있는 십자가 고상의 얼굴에서 그리스도가 당하신 수난의 일부를 보았습니다: 멸시와 침 뱉음을 받으신 것, 얼굴을 맞으신 것, 많은 슬픔과 고통 등. 주님의 얼굴색은 종종 변했고, 그 복되신 얼굴에 피가 말라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슬픔과 어두움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더 분명히 보기 위해서 보다 밝은 빛을 원했습니다. 그 때 나의 이성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신다면 그렇게 하실 것이며 나에게는 하나님 외에 다른 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제25장 나는 네 종류의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서, 소심함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임합니다. 이 두려움은 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육체적인 질병이나 그밖에 악하지 않은 다른 고통들처럼 우리에게서 죄를 제거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받아들인다면, 그러한 고통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극을 받고 죄의 잠에서 깨어납니다. 죄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은 고통과 연옥 불에 대한 두려움을 획득하지 않는 한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를 구하게 하므로 그에게 도움을 주며, 그로 하여금 성령의 가르침에 의해 통회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세 번째는 확신하지 못하는 두려움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절망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확신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미워하시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그것을 몰아내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네 번째는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경건한 두려움뿐이며, 우리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대단히 달콤하고 온화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두려움은 사랑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두려움과 사랑은 종류와 효과가 각기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들 중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비록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두려워합니다.


비록 거룩한 것으로 위장하고 나타난다 해도, 경건한 두려움이 아닌 두려움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경건한 두려움을 다른 두려움들로부터 식별하고 구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경건한 두려움이 많을수록, 더 크게 우리를 부드럽게 하고 힘을 주고 즐거워하고 안식을 줍니다. 반면에 거짓 두려움은 우리를 공격하고 괴롭히고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악한 영을 식별하고 거부해야 하듯이, 이 둘을 식별하고 거짓 두려움을 거부해야 합니다. 악한 영은 선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와서 우리를 희롱하고 활동할 때에 먼저 우리를 꾸짖고 시험하고 불안하게 하며 방해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그는 우리와 많이 교제할수록, 그만큼 더 크게 우리를 억압하며 평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며,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사랑 안에서 강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평화롭고 평안하신 것처럼 우리도 평화롭고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듯이, 우리도 자기 자신과 동료 신자들을 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 타울러

영국의 신비가 노리지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은 영국의 가장 대중적인 신비가로서 영국의 노리지 지방에 있는 성 줄리안교회 근처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아마 그녀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저자 줄리안의 삶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그녀의 작품과 그녀와 동시대에 살았던 린의 마저리 켐프(Margery Kempe of Lynn)에 의해 언급되는 것과 유언장을 통해서만 그녀의 생애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줄리안은 1342년 12 월에 영국의 노리지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세속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단지 수도명이 줄리안이라는 것만 전해진다. 아마 그녀가 거주했던 교회가 줄리안교회였기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373년 5월 13일 서른 한 살의 줄리안은 심하게 앓았다. 그날 밤 사경을 헤매던 줄리안은 하나님으로부터 16가지의 계시를 받았다(장문 제2장). 그 중 마지막 계시는 앞의 현시들의 진리를 확증하는 계시였다. 이때부터 줄리안은 성 줄리안 교회에 부속된 다락방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이 환상들을 토대로 기도와 관상과 영적지도의 삶을 시작했다.


성 줄리안 교회는 당시 4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랜 전통의 교회였다. 그녀가 은둔 수도생활을 했던 성 줄리안 교회는 1942년에 폭격되었으며, 지금의 장소는 그 후 성공회 수녀회에서 기도처로 재건한 것이다. 줄리안 교회의 종탑 근처에 지은 이 줄리안의 은거처는 한 면이 교회의 벽에 맞대어 지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서, 방 한 면에 낸 창을 통해 사제가 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 방에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창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향해 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충고나 영적 지도를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창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은거처에는 외부 손님들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되어서 무질서한 대화를 금했다. 그녀의 일과 대부분은 이 은둔처에서 침묵과 관상기도로 짜여 있었다.


당시의 수도생활은 독신 남자수도원(제1회)과 독신 여자수도회(제2회)형태로 되어있어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정한 기간 동안 수도하는 유기(有期) 또는 종신(終身) 서원을 하고서 수도생활을 했다. 그러나 열심히 있는 평신도로서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서원은 하지 않은 채 수도자의 정신으로 일상생활을 하거나 은둔수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제3회; 在俗會)이 있었다. 이러한 제3회 형태의 수도생활은 특히 잉글랜드 동부와 플랑드르 지방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노리지는 이 지방과 상업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13세기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 노리지에 재속(在俗) 은수사가 50명이 있었고, 린에는 약 13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런던에 약 20명의 은둔자가 있었던 것과 비교된다. 노리지는 당시 런던 다음으로 번창했던 큰 항구도시로서, 영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종교적 여성 단체가 존재했던 유일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줄리안은 카로우(Carrow) 지역의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데 라틴어 구사에 익숙하지 못했거나,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당시의 통상적인 표현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줄리안은 거처에 담을 높이 쌓고 가축을 몇 마리를 길렀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개인인 소유도 얼마 소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활 대부분은 관상적 기도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에 기록 어디에도 극단적으로 금욕생활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저서 및 그녀의 영성 줄리안은 1373년에 자신이 받은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집필하거나 구술로 전하고자 했다. 그녀의 첫 번째의 『환시』(Book of Showings)는 “단문”(Short Text)으로 되어 있으며, 그 후 1393년경에 완성된 신학적으로 보다 발전된 “장문”(Long Text)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론
개론
1. 단문
2. 장문